“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왔느니라”(누가복음 21장 28절).
우리는 12과에서 예수의 재림에 관하여 공부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어떠한 모양으로 왜 재림하시는지를 공부하였습니다. 본 과에서는 그가 언제쯤 다시 오시는가 하는 문제를 공부할 것인데, 성경은 이에 관하여 분명히 말하기를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태복음 24장 36절)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그 정확한 날과 시간은 왜 아무도 모르게 하셨을까요? 이것은 아마 사람으로 하여금 항상 준비하고 지내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 날이 가까이 이르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징조는 주셨습니다.
예루살렘 멸망의 전감
예루살렘은 옛날 유대 나라의 수도요 정치적 종교적 중심 도시였습니다. 예루살렘에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훌륭한 성전이 있었는데, 그 성전은 수천 명의 사람이 40년 이상 걸려서 건축했는데, 길이가 21.2미터, 너비가 10.6미터, 높이가 15,9미터나 되는 큰 대리석들이 사용되었다고 하니 그 규모의 굉장함은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께서는 이 예루살렘 성이 멸망할 것을 생각하시고 눈물을 흘리며 탄식하시기를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아이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마태복음 23장 37, 38절)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오실 때에 성전을 가리키며,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물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마태복음 24장 2절)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심히 놀랐습니다. 유대 민족의 자랑인 이 성전이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진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만일 그런 일이 생긴다고 하면 그것은 세상 끝에나 있을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들이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마태복음 24장 3절)라고 물었을 때, 예수께서는 먼저 예루살렘 멸망에 관하여 대답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지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형벌의 날이니라…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누가복음 21장 20, 21, 24절).
이 말씀은 설명할 필요도 없이 아주 명백합니다. 예루살렘이 외국 군대에게 에워싸이거든 지체하지 말고 곧 도망하라는 경고입니다. 그러면 과연 그런 사실이 있었을까요?
영국의 유명한 철학자요 신학자인 사무엘 클라크 박사(A.D. 1675~1725년)는 “네로의 치리 12년에 시리아 총독 세스티어스 카라스가 대군을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침공해 왔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예루살렘에 있었던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A.D. 37~97년)는 기록하기를 “세스티어스는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공격하다가 함락시킬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예상과는 반대로 아무 이유도 없이 포위했던 것을 풀고 퇴각하였다”고 했는데, 이것은 기원후 66년의 일로,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로 인하여 예수의 말씀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예루살렘에서 모두 도피하였습니다. 그 후 기원후 70년에 이르러 로마 장군 타이터스가 제2차로 예루살렘을 포위 공격했는데, 그 때에 10만 명 이상의 유대인이 살육을 당하고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과 유병으로 죽었으며,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놓이지 않고 완전히 훼파되었습니다.
클라크 박사는 또 진술하기를 “예루살렘의 멸망에 있어서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도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한 가지 실례만 보아도, 우리가 성경의 예언을 공부하고 때의 징조에 유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늘의 징조
1. 해가 어두워짐
세상 종말에 관한 제자들의 질문에 대하여 예수의 말씀은 아래와 같이 계속되었습니다.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마태복음 24장 21, 22, 29절).
1780년 5월 19일, 미국 뉴잉글랜드 지방을 중심으로 해서 대낮이 갑자기 어두워지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이에 대하여 1869년판 '웹스터 사전'은 ‘암흑일’이란 제목 아래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사람들이 집 밖에서 수 시간 동안 보 인쇄물을 읽을 수가 없었다. 새는 저녁 노래를 부르고 모습을 감추어 조용해졌다. 닭들은 홰에 오르고 짐승들은 외양간을 찾았다. 집들에서는 촛불들이 켜졌다. 암흑은 오전 10시경부터 시작해서 그날 밤중까지 계속되었다. …이 기이한 현상의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기록에 의하면 그날 밤의 달은 전면이 피처럼 빨갛게 되었는데, 사람들은 심판날이 온 것이라고 두려워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해가 어두워지는 때는 “환난 후에 즉시”라고 했습니다. 그 ‘환난’은 성경을 신앙의 기초로 삼는 그리스도인들이 당한 박해를 가리키는데, 이는 기원후 538년부터 1798년까지 1260 년간 계속된 박해입니다 (다니엘서 7장 25절;요한계시록 12장 6, 14절의 해석에 의함). 그러나 “그 날들을 감하리라”고 했는데, 과연 역사에 의하면 18세기 중엽에 신앙 자유의 길이 열리면서 사실상의 박해는 정지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암흑일은 박해의 기간이 마치기 전인, 그러나 사실상으로는 박해가 그친 뒤인 1780년에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성경상의 예언을 빈틈없이 부합시켰습니다.
2. 별이 떨어짐
암흑일 후에 있을 또 한가지 징조는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라고 했는데,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같은 사실을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같이 땅에 떨어지며”(요한계시록 6장 13절)라고 하였습니다. 이 예언은 1833년 11월 13일에 성취되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예일대학 교수 ‘옴스덷’은 미국 대백과사전 유성이란 제목 아래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1833년 11월 13일 아침에 있은 유성을 볼 수 있었던 사람은 세계가 생긴 이래 또는 적어도 유사 이래 가장 놀라운 유성을 본 것이다.” 그리고 그 광경은 “북아메리카 전역에서 볼 수 있었고,…본 사람들은 그 수를 내리는 눈송이와 소나기의 빗방울에 비겼다”고 하였습니다.
또 ‘찰스 영’은 그의 저서 ‘천문학 수첩(Manual of Astronomy)’에 기술하기를 “대지 유성우(遊星雨)로서 1833년 11월 12일 밤부터 다음날까지 계속된 사자좌의 별소나기처럼 굉장한 것은 또다시 보기 어려울 것이다. 어떤 지방에서는 그 수를 20만이나 셀 수 있었는데 그렇게 5, 6 시간을 계속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유사 이래 최대의 별소나기는 틀림없이 예수 재림의 징조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천연계의 게시판을 사용하여 마지막 때가 되었다는 것을 모든 인류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지식의 더함
이 시대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지식이 급속히 더해진 사실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세계 역사의 종말, 즉 예수 재림의 날이 가까운 징조라고 성경은 가리킵니다. 다니엘의 글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다니엘서 12장 4절).
이 예언의 말씀과 같이 다니엘서의 예언은 최근까지도 해석할 수 없는 봉함된 글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9세기에 들어와서야 그 알 수 없었던 문구들을 해석하게 되어 성경 지식이 놀랍게 발전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과학 지식도 급속히 발달하여 원자 시대, 우주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아주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는 모든 문명의 기구들은 어느 것이나 18세기 이전에 발명된 것은 거의 없습니다. 과학 지식은 더욱 고도로 발달되어 우주여행이 가능하게까지 되었다고 떠듭니다. 그런데 한 가지 두려운 사실은, 도의(道義)와 예절이 과학 지식의 진보와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것입니다. 원자력과 우주 로케트를 생각할 때에는 누구나 핵무기와 전쟁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으며 또는 그 결과에 대하여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성경은 전쟁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예언했을까요?
전쟁과 전쟁의 소문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마태복음 24장 6절).
여기서 ‘난리’라는 말이 다른 번역에는 전쟁으로 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시대에는 전쟁과 전쟁 소문을 옛날보다 더 많이 듣겠다는 말입니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B. A. 소로킨’ 교수는 전쟁에 관한 흥미 있는 숫자를 발표하였습니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과거 2500년간 902회의 전쟁과 1,615회의 내란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20세기 이후의 전쟁과 내란의 수는 그 이전의 8배나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후로는 전쟁의 수와 그 규모는 점점 더 증대해 갈 것이 틀림없습니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누가복음 21장 26절)라고 예언하셨는데, 이 말씀은 과연 오늘날 핵무기에 대한 인류의 불안과 공포를 잘 표현하여 나타낸 말씀이라 하겠습니다.
종교 연합과 평화 운동
핵무기의 공포 속에서 평화 운동도 확산됩니다. 평화 운동에 대해 말하자면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군비 축소 회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시 이 회의에 참가한 나라는 58개국이요 그 대표자 수는 2,500명이었습니다.
그러나 별 성과를 얻지 못한 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국제연합의 알선으로 안전보장회의가 성립되어 때때로 군축 회의가 개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예기(豫期)하는 바와 같은 결론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일반이 잘 아는 사실입니다. 마지막 단계에 있어서 종교가 세계 평화에 크게 활약할 기회가 옵니다. 그리하여 전세계의 종교는 하나가 되자고 부르짖게 됩니다. 그리하여 평화 운동에 일치하는 보조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 사건을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말일에…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이사야서 2장 2~4절)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르기를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데살로니가전서 5장 3절)고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종교 연합 운동과 아울러 제창되는 평화 운동은 인류의 최후의 노력이 될 것이요 오히려 그 입에 “평안하다 안전하다” 하는 소리가 있는 “그 때에 멸망이 홀연히 이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훌륭하게 보이는 운동의 이면에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을 적대하는 사단의 비밀이 내포되어 있음을 예언의 영의 가르침을 받지 않는 자로서는 도저히 깨달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시대의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예언의 참 빛을 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약소 민족의 흥기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마태복음 24장 7절).
민족 간의 알력과 나라 사이의 다툼이 끊일 사이가 없으면서도 민족들은 일어납니다. 이것 역시 마지막 시대의 징조로 지적되었습니다. 요엘은 이 사실을 예언하기를 “약한 자도 이르기를 나는 강하다 할지어다”(요엘서 3장 10절)라고 하였습니다.
1945년 8월 제2차 세계대전이 마치자 곧 인도네시아가 독립한 것을 시초로 하여 오늘날까지 많은 약소민족들이 독립하였습니다. 각자가 모두 우리도 독립 국가다, 타민족에게 예속되지 않는다고 부르짖습니다. 과연 스스로 "강하다 할지어다”라고 한 예언 그대로가 아닙니까?
사회의 타락과 부패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디모데후서 3장 1~5절).
이것은 말세에 사람들의 마음과 생활 태도가 어떠할 것을 묘사한 것입니다. 또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태복음 24장 37~39절).
지금으로부터 약 4,300년 전에 이 세상이 홍수로 멸망당한 일이 있었는데, 그 때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창세기 6장 5~7절)고 하셨습니다.
당시에 사람들이 너무도 타락하고 부패하고 정의에서 떠났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저들을 버려두실 수 없으셨는데, 마지막 시대의 형편이 꼭 그 때와 같을 것이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과연 오늘날의 세상 형편은 그렇지 않을까요? 도덕상의 부패가 어디든지 충만하여 있습니다. 방탕함은 이 시대의 특별한 죄악입니다. 오늘날 청소년들은 남녀를 물론하고 도덕적으로 부정한 일을 행하여 몸과 심령을 파괴시키고 증오할만한 악습을 행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도덕의 표준이 떨어지고 청소년들의 범죄가 증가하고 성도덕이 극도로 문란한 적이 일찍이 없었습니다. 또 가정의 질서가 파괴되고 난폭과 향락과 독선과 자기만족만이 날뛰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무시하고 모독하는 경향은 얼마나 많습니까? 죄악이 성행하는 이 시대에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마지막 큰 위기가 박두하였다는 것이며, 세상이 멸망을 향해 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천국 복음의 의미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태복음 28장 19, 20절)
이 명령에 따라 오늘날의 복음 전도 사업은 굉장히 발전되고 있습니다. 우선 성경에 관하여 생각해 보아도, 옛날에는 한 책 한 책씩 붓으로 베껴 썼으므로 책은 귀중품 중에도 아주 고가(高價)의 것이었지만 오늘날은 인쇄술이 발달되어 성경이 누구의 손에나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1804년에는 대영성서공회, 1816년에는 미국성서공회가 창립되어 전 세계 방방곡곡에 성경을 보급시키고 있는데, 현재 1,431개 이상의 방언으로 번역 출판되어 마음의 양식이 되고 있습니다.
또 재림 기별을 전하는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의 활동만 하더라도 전도를 개시한 지 불과 150여 년 남짓한데 현재 전세계 226개 나라 중 197개 나라에서 전도 사업을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그 선전 방법도 여러 가지로 발달되어 구두(口頭) 전도, 문서 전도, 통신 전도, 라디오·텔레비전 전도, 위성 전도 등 온갖 방법을 다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태복음 24장 14절).
오늘날 복음이 급속도로 전세계에 전파되고 있는 것은 가장 확실한 재림의 징조입니다. 이밖에도 홍수, 지진, 해일, 폭풍, 흉년, 유행병 등 천재지변(天災地變)이 다 재림의 징조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는데, 말세가 가까울수록 여러 가지 재변(災變)은 날로 더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들을 심상히 볼 수 없습니다. 재변 하나하나는 다 마지막 때가 되었다고 믿고 회개하라는 경고를 우리에게 줍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태복음 24장 32, 33, 44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