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과 영원한 보상

by admin posted Dec 27,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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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절 :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단 12:3)
 
시작하는 말
 
  다니엘서의 마지막 장인 12장은 11장의 연속임에 틀림없지만 동시에 다니엘서 전체의 결론이기도 하다. 우리는 다니엘서의 서론인 1장이 시작될 때 지리적(地理的)으로 북방 왕이었던 바벨론이 영화로운 땅 예루살렘을 공격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포로로 잡아가는 비극적인 역사를 보았다.
그런데 우리는 다니엘서의 마지막 장면에서 또다시 최후의 영적 북방 왕이 영화로운 산인 하나님의 마지막 교회와 백성을 공격해오는 모습을 예언으로 조명(照明)했다. 그러나 이번의 결과는 전과 판연(判然)하게 다르다. 그 때의 육신적인 이스라엘 백성은 불순종과 불성실로 바벨론에 짓밟히고 끌려갔지만, 지금 지구 역사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 (게 12:17)이 있어서 사자굴 속의 다니엘처럼, 풀무불 속의 세 친구처럼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끝까지 살아남아서 지구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철두철미(徹頭徹尾)하신 계획을 끝내 이룰 것이다. 그들이 바로 역사의 주역(主役)이요, 마침내 이 땅의 영원한 주인이 될 것이다.


 ▶ 미가엘이 일어나는 때

 1.다니엘서의 마지막 장인 12장은 어떠한 극적인 주제로 시작되는가?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 (단 12:1).

  설명 이곳의 "그 때에"는 11장 45절의 사건이 일어나는 때와 연관이 있음이 문맥에서 분명해진다. "마지막 때"가 시작된 것은 11장 40절부터인데 그것은 프랑스혁명으로 시작된 근세사의 의미이기도 하다. 지나온 역사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시련과 역경에 가득 찬 여정을 거쳐 오는 동안 하나님의 임재(臨在)로 도움을 받고 보내신 말씀으로 격려를 받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 세상의 역사가 절정에 달하고 선과 악의 대결이 막바지에 이른 때, 지금까지의 싸움을 승리로 이끌어 오신 하늘의 사령관, 곧 "네 민족을 호위(護衛)하는 대군(大君) 미가엘(Michael)이 일어" 나실 것이다. "누가 하나님과 같은가(Who is like God?)"라는 도전적인 이름을 가진 이 분은, 이름 그대로 하나님과 동일한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미가엘은 실수를 범한 약점을 가지고 죽은 모세를 영원히 자신의 포로로 삼으려는 사단에 맞서 그를 빼앗아 부활에 이르게 하셨으며(유 9), 그를 변화산에 나타나게 하신 분이시다(마 17:1~3). 그리고 구원의 역사가 위기에 처했을 때 다니엘의 기도에 응답하고자 가브리엘을 친히 돕기 위해 달려오신 분이시며, 마침내 재림의 날 마지막 승리를 기다리며 죽음으로 잠들어 있는 성도들을 깨우기 위해 우렁찬 나팔소리와 함께 또다시 오실 분이시다 (살전 4:16, 17).
이 일을 위해 언제 일어나실 것인가. "책에 기록된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을" 준비가 끝난 때이다. 그 책은 무슨 책인가. 바로 7장 9~13절에서 이미 그 장면이 소개된 재림 전에 있을 조사심판의 때에 펼쳐지는 책, 곧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 (단 7:10)는 본문에 나오는 책이다. 그것은 성도를 옹호하기 위해 베푸시는 삼판이며 그 결과로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게"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 그 심판이 시작되는가. 그것이 우리가 8장에서 연구한 "2300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해지리라"(8:14)는 말씀의 뜻이다. 그것은 1844년부터 하늘성소의 둘째 칸인 지성소에서 시작된 대속죄일의 마지막 장면인 것이다. 대속죄일의 봉사가 끝나면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 성소에서 영원히 철수하시며 범죄 한 인류를 위해 중보하시는 일을 끝내실 것이다 (계 15:5~8). 그리고 곧 이어 이 땅에는 마지막 일곱 재앙이 집행될 것이며, 그 재앙이 끝나기 전에 예수께서는 만왕의 왕으로 재림하실 것이다.

 2.책에 기록된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을 받을 때에 어떤 특별한 일이 있게 되는가?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단 12:2).

  설명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대가로 부여되는 영생은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부활을 통하여 비로소 누리게 된다. 사람이 죽는 즉시 몸을 떠난 영혼이 누리게 된다는 영생(永生)에 대한 가르침은 성경에는 전혀 근거가 없는 거짓이다. 그것은 사단의 처음 거짓말인 영혼불멸설에 기초한 것이다 (창 3:3, 4). 부활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요 (요 5:28, 29, 11:24), 사도들의 가르침이며(살전 4:13~18 ; 고전 15:35~44, 51~54), 지금 다니엘이 가르치고 있는 진실이다.
부활에는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속죄(贖罪)함을 받은 의인들이 영생을 얻기 위해 참여하는 "첫째 부활"이 있다 (계 20:5, 6 ; 살전 4:13~18).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자신의 죄를 용서받지 못한 죄인들이 재림이 있은 지 천년 후에 불로 소멸되는 심판을 받기 위하여 참여하게 되는 "둘째 부활"이 있다 (계 20:5, 6 ; 요 5:28, 19). 그래서 첫째 부활을 "생명의 부활", 둘째 부활을 "심판의 부활"이라고 부른다 (요 5:28, 29).
그런데 다니엘서 12장 2절에는 재림의 대에 영생을 얻기 위하여 부활하는 의인들과 함께 "수욕(羞辱)을 받아서 무궁(無窮)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포함되어 있어 혼란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예외에 대하여, 예수께서 이미 사례를 설정해 놓으셨다.
자신을 재판한 파렴치한 대제사장 가야바의 참람(僭濫)된 언사(言辭)와 처사(處事)를 듣고 보고 나신 뒤, 주변 사람들을 향하여,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人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마 26:64)고 하셨다. 둘째 부활에 참여하여야 할 죄인이 어떻게 살아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목도할 수 있는가. 그러나 그들의 부활은 우선 목적부터 다르다. 그들은 영생을 얻기 위해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그토록 조롱하고 모독한 그분이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었음을 똑똑히 알 수 있는 참관(參觀)의 기회를 갖게 될 뿐이다. 이러한 유(類)의 사람들을 위한 부활을 특별부활(特別復活)이라고 부른다.

 3.세상의 역사가 종결되는 이 심각한 시간에 가장 큰 명예와 영원한 영광을 누릴 사람들은 누구인가?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단 12:3).

  설명 다니엘은 지식(知識)뿐만 아니라 지혜(智慧)가 있는 사람이었다. 지식과 지혜는 다르다. "지혜 있는 자"의 본뜻은 "분별력이 있는 사람", 혹은 "분별력을 가지게 하는 사람"이다. 제혜는 지식을 바르게 활용할 줄 아는 정신적 기능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인 것이다. 별처럼 빛났던 그의 일생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明哲)" (참 9:10)임을 자신의 생애로 실증(實證)한 것이다.
사람은 모두 세상의 칭송과 인기를 독차지하는 "스타(star)"가 되고 싶어 한다. 스타가 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이 소요되는가. 그러나 세상의 명예나 영광은 너무나 무상(無常)하여 오늘의 스타가 내일에는 별똥이 되고 만다. 그러나 여기 영원한 스타가 되는 길이 있다. 그것이 바로 죄 때문에 길을 잃고 진리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사람들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인간의 구주(救主)께 인도하는 일이다.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인간을 인도하여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일은 그 자체가 스타의 생애인 것이다. 다니엘과 세 친구의 생애는 그러한 일이 가능하도록 다니엘이나 세 친구와 같은 청소년을 교육하는 일의 중요성을 깨우쳐 주는 표본이다.

 ▶ 마지막 때까지 인봉된 책

 4.마지막 계시를 마치며 다니엘은 자신이 받은 계시에 대해 어떠한 지시를 받는가?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단 12:4).

1769년 - 제임스 와트(J. Watt)의 증기기관 발명
1802년 - 트레비틱크(Trevithick)에 의한 기관차 시운전
1807년 - 풀톤(Fulton)의 기선 발명
1822년 - 스티븐슨(Stephenson)에 의한 기치 발명


  뿐만 아니라, 중세 교황권의 몰락으로 신앙과 양심, 출판과 학문의 자유를 누리게된 유럽은 새로운 지식 사회로 급변하고 있었다.

1803년 - 제지업(製紙業)의 기계화
1811년 - 윤전기를 사용하는 인쇄술(印刷術)이 발명됨
1804년 - 대영성서공회가 발족됨
1806년 - 미국성서공회가 발족됨
1844년 - 모어스(Mores)의 새로운 전신(電信) 방법이 소개됨


  특별히 18세기말에 걸치는 이 시기에 적어도 몇 개의 혁명이 겹쳐 일어나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변화가 일어난 시대이다.

*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1765 ~ 1781년) 산업혁명이 일어남
* 프랑스혁명이 일어나(1789년) 중세 교황권이 몰락함으로써 1798년) 중세기가 끝나고
   근세사가 시작됨
* 산업혁명과 프랑스혁명의 결과로 공산혁명이 시작됨
* 미국이 국가 체제로 출범함(1789년 초대 대통령으로 워싱톤이 취임함)

 
 이처럼 이 시기는 격변의 때로 과학적 지식과 교통수단뿐만 아니라 성경에 관한 지식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1830년대에 미국의 침례교 신자 윌리엄 밀러(W. Miller)에 의해 초교파적인 재림운동이 일어났다.

 ▶ 마지막 때와 연관된 예언적 기간들

 9."마지막 때"에 관한 계시를 종결지으며 어떠한 예언적 기간들이 강조 되거나 부가되었는가?

  해답 지금까지 다니엘이 그토록 관심을 가져온 "마지막 때"와 "2300주야" 문제, 그리고 이 기간과 연관되어 하나님의 성소와 백성이 겪게 될 온갖 경험에 관한 마지막 계시를 마치면서 다시 한 번 "마지막 때"의 기준 연대(年代)인 "한 때, 두 때, 반 때," 곧 1260년 기간이 "반드시"라는 말로 재확인(再確認)되었다. 그리고 이에 연관하여 두 개의 보조적인 예언적 기간이 1290일(년)과 1335일(년)이 부가(附加)되었다. 이 모든 경우에서 예언상의 1일에는, 1260일의 경우처럼 실제의 1년을 가리키는 「연-일 원칙(year-day principle)」이 일관성 있게 적용되어야 함은 말할 필요가 없다. 이제 그 연대를 하나씩 살펴보자.

 ▶ 1260년 기간

 10."마지막 때"의 기준 연대인 "한 때, 두 때, 반 때", 곧 1260년 기간의 의의와 특징은 무엇인가?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에 있는 자가 그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생하시는 자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지기까지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단 12:7).

  설명 성경 본문에 나타나 대로 이 기간의 특징은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지"는 핍박(逼迫) 기간이다(단 7:25, 11:32~35, 12:7). 엘리야가 이세벨에 의하여 혹독한 시련을 겪던 표상적(表象的)인 "삼년 반"의 의미가 내포된 기간이다. 1260년 기간(AD 538~1798년의 끝인 1798년은 "마지막 때"의 기준 연대로 요한계시록에도 그 기간이 5회나 나와 있어 기준 연대로서의 (계 11:2, 3, 12:6, 14, 13:5). 의의(意義)를 드높이고 있다.

 ▶ 1290년 기간

 11.1290년 예언 기간의 의의와 특징은 어디에 있는가?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세울 때부터 일천 이백 구십 일을 지낼 것이요" (단 12:11).

  설명 이 기간은 다니엘서에 처음 소개되는 예언적 기간이기는 하나 그것의 전제(前提)가 되고 있는 1260년 예언의 연장이나 확대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은 1260년의 예언적 기간과 무엇이 다른가?
1260년 기간이 성도가 핍박받고 고난 받는 기간임을 강조한 반면, 1290년 기간은 성경 본문에서처럼, 이 기간의 시작이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하는 미운 물건을 세울 때부터"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 기간을 시작하는 사건인,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세울" 것이라는 표현이 이미 다니엘서 11장 31절과 8장 13절에도 제시되고 있어 두 기간이 비록 장단(長短)은 다르지만, 같은 내용, 같은 대상, 같은 시기를 다루고 있음이 자명해진다.
뿐만 아니라, "멸망케 하는 죄악"(8:13), "미운 물건"(9:27) 등으로 표현되는 다른 사례들까지 있어서 그 속성을 이해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다. 이러한 표현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는 영역인 성소나 기구들, 거룩하신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를 훼방하거나 더럽히는 사람이나 사물을 가리킬 때 사용된 것이다.
그렇다면 1290년 기간이 1260년 기간보다 30년이 더 연장된 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그 기간을 시작하는 사건의 특성에 차이가 있다. 1260년 기간의 시작인 538년 작은 뿔인 중세 교황권에 의하여 성도의 "권세가 깨어지"기 시작하는 연대임에 반하여, 1290년 기간의 시작은 "매일 드리는 제사", 곧 예수께서 하늘성소에서 행하시는 끊임없는 봉사타미드를 "폐(廢)하며 미운 물건을 세울 때부터"인 것이다. 이러한 기산점은 이 기간들의 기준 연대인 1798년538+1260=1798에서 역산(逆算)할 때 찾게 된다. 그것은 1798-1290=508년이 된다. 그렇다면 실제로 서기 508년에 이에 해당하는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가?
중세 유럽의 역사에서의 508년은 의미심장한 해이다. 서기 476년 서로마를 멸망시킨 게르만족의 부족들 가운데 강력한 부족을 프랑크(Frank)였다. 이 프랑크의 왕 클로비스(Clovis)는 자신이 496년 게르만족의 다른 부족인 알라마니(Alamani)와 생사를 건 싸움에서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승리한 데 대한 감사로 그의 병사 3천여 명과 함께 집단으로 침례를 받고 그리스도교로 개종(改宗)했다.
그리하여 프랑크는 당시 서방 세계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로마교회의 맏딸"로 다시 태어나 대대로 충성을 다하여, 754년에는 자신이 빼앗은 동로마의 땅을 교황에게 선사하여 최초의 교황령(敎皇領)이 되게 했다. 이에 대한 감사로 교황은 서기 800년에 프랑크의 찰스 대제에게 관을 씌워 신성(神聖) 로마제국을 탄생시켜 1806년 나폴레옹에 의해 망하기까지 중세기의 정치적 반려자로 동고동락했다. 다시 말하면, 서로마의 뒤를 이은 신성로마제국과의 정교(政敎) 일치의 시초요 기초가 된 것이다.
당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대부분의 게르만부족들은 로마교회가 이단시(理端視)한 아리안주의(Arianism ·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함)에 기울어져 있어 로마교회와 적대적 관계에 있을 때 프랑크 왕의 개종은 로마교회의 일대 쾌거였다. 서기 507년 아리안주의 게르만부족 서고트와 프랑크는 브이예 부근에서 대전(大戰)을 벌였는데, 프랑크 왕 클로비스는 이 전쟁이 하나님과 로마교회를 위한 성전(聖戰)이라고 강조했다.(T. Hodgkin, Theodoric The Goths 186). 이 전쟁에 이긴 프랑크는 파리를 수도로 정하고 해방된 고울(Goul) 지방은 중세 교황권의 터전이 되었다.
이 싸움의 결과로 다음해인 508년 클로비스는 동로마 황제로부터 로마의 집정관(consul)의 칭호를 받아, 중세 교황권의 파트너로 공식적인 입지를 확보했다. 이리하여 508년 중시기 정교일치 체제의 표본이 확립되어, 800년 이후 중세 교황권과 신성로마제국의 연합 체제 구축을 가능하게 했다. 또한 507년 강력한 서고트를 제거하고 538년 동고트마저 동로마의 지원을 받아 제거함으로써 명실 공히 1260년 기간을 시작할 수 있는 기초를 놓은 것이다. 그것은 예수께서 로마 군인들의 예루살렘 포위를 내다보시고 다니엘서 9장을 인용하여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마 24:15)이라고 말씀하신 경우와 다름이 없다.
   
                                                                                        
 ▶ 1335년 기간

 12.1335일 기간의 시작과 끝은 무엇이며 어떤 의의가 있는가?

  "기다려서 일천 삼백 삼십 오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단 12:12).

  설명 이제 또 하나의 예언적 연대가 마지막으로 부가되었다. 1335일(년)이다. 우선 이 기간의 기산점이 별도로 제시되지 않았지만 문맥으로 보아 직접적으로 앞 기간의 시작인,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세울 때"(12:11)부터임이 합당하다.
그리하여 508+1335는 1843년에 이른다. 기원전 457년에 시작되는 2300주야 기간과 일치하는 연대이다. 실제로 2300주야 계시가 주어진 8장에서 "이상에 나타난 바 매일 드리는 제사와 망하게 하는 죄악에 대한 일과 성소와 백성이 내어준 바 되며 짓밟힐 일이 어느 때까지 이를꼬"라고 묻는 질문에 대해 "2300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여지리라"(8:14)는 대답이 주어졌으니 2300주야의 끝은 실제로 1844년이었다.
1844년과 1843년 사이의 1년의 차이는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실제로 요한계시록 14장 6, 7절에 기록된 첫째 천사의 기별, 곧 다니엘서 8장 14절의 2300주야 예언에 기초한 심판의 기별을 전하기 시작한 것은 1843년부터였다(엘렌 지 화잇, 초기문집, 232 ~237, Testimonies to Ministers, 112 ~ 118).
뿐만 아니라 에스라 7장 7절에 근거하여 기원전 457년에 시작된 2300주야의 끝이 1844년 10월 22일이 된 것도 그 해의 대속죄일인 유대 성력(聖曆)의 7월 10일이 양력으로는 10월 22일에 해당되었기 때문이다(레 16:29, 30). 실제로 가을부터 가을까지를 한 해로 치는 달력을 사용한 유대 민력(民曆)에 따르면, 다니엘서 8장 14절, 2300년의 마지막 해는 1843년 가을부터 1844년 가을가지 포함하게 된다. 그러므로 1월부터 12월을 1년으로 하는 로마력(曆)으로 계산하는 지금의 연대와는 실제로 3개월 이상이 겹치게 되어, 1843년과 1844년의 차이는 심각히 고려할 사안이 아니다.

 13.1335년의 예언적 기간에 이르는 사람은 왜 복이 있다고 했는가?

  "기다려서 일천 삼백 삼십 오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 날에는 네 업을 누릴 것임이니라"(단 12:12, 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계 14:13).

  설명 이상의 두 성경 본문은 문맥과 구성 때문에 서로 일치되는 내용이다. 왜냐하면, 모두 2300주야에 기초한 심판과 세상의 마지막을 설명하고 선포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왜 이 기간에 이르는 사람은 복이 있는가. 그 대답은 다니엘의 고뇌에서 찾게 된다. 그 기간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백성이 당하여야 할 시련과 고통, 진리를 위해 치러야 하는 엄청난 대가인 "칼날과 불꽃과 사로잡힘과 약탈을 당하여 여러 날 동안 쇠패"(단 11:33)하게 될 쓰라린 역사가 모두 지나간 후이며, 마침내 아래의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체험하는 특권을 누릴 것이기 때문이다.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위해 신원(伸寃)하셨고 대가 이르매 성도가 나라를 얻었더라"(단 7:22).

  이 약속은 다니엘서 8장 14절에 기초한 세 천사의 기별(계 14:7~12). 곧 "영원한 복음"인 심판의 기별(계 14:6, 7)을 듣고 받아들인 모든 사람들에게도 약속된 보증이다(계 14:13).

 ▶ 영원한 보상

 14.다니엘에게 어떠한 영원한 보상이 약속되었는가?

  "기다려서 일천 삼백 삼십 오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 날에는 네 업을 누릴 것임이니라"(단 12:12, 13).

  설명 자신이 받았으면서도 모두는 깨닫지 못한 하나님의 백성과 성소에 관한 마지막을 다니엘을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그 끝은 다니엘의 염려와 불안, 그리고 고뇌처럼 그렇게 어둡고 두려운 것이 아니라, 참으로 복되고 진정으로 기다려지는 모든 약속의 성취로 가득 차 있었다. "평안히 쉬다가 끝 날에는 네 업(業)을 누릴 것임이니라". 어디서 쉴 것인가. 흔히 말하는 대로 영혼이 천당에 가서인가. 아니다. 재림 시에 있게 될 의인의 첫째 부활 때까지 잠처럼 의식 없는 상태로 쉬게 될 죽음의 휴식인 것이다.

  "의인이 죽을지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자비한 자들이 취하여 감을 입을지라도 그 의인은 화액 전에 취하여 감을 입은 것인 줄로 깨닫는 자가 없도다 그는 평안에 들어갔나니 무릇 정로로 행하는 자는 자기들의 침상에서 편히 쉬느니라"(사 57:1, 2).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우리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거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를 내어 놓으리로다 내 백성아 갈지어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간 숨을지어다"(산 26:19, 20).

 ▶ 마치는 말

  18살 어린 나이에, 정든 고향과 살아하는 부모와 가족의 곁을 떠나, 90여 평생을 만리타향 이국에서 살아간 나그네 다니엘, 민족의 소망과 인류의 구원이 약속되고, 조상의 얼이 서린 예루살렘과 그 성전의 황폐를 그렇게나 마음 아파하던 애국애족의 사나이, 위대한 기성세대 다니엘, 왕과 사자들 앞에서는 태연자약했지만, 동족의 운명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는 그처럼 애절(哀絶)하여 몸져눕기까지 했던 인간 다니엘, 세계 대제국들의 흥망성쇠가 어지럽게 교차한 세계사의 십자로에서, 나라들과 왕들의 운명을 좌우하던 늠름한 선지자-정치가 다니엘, 나는 새도 떨어뜨릴 대제국의 높은 재상이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어린아이처럼 겸손했던 기도의 사람, 말씀의 사람 다니엘, 포로의 몸으로 포로 된 당에서 살아온 90성상에 거센 폭풍과 시련이 하루도 쉴 새 없이 휘몰아쳤어도 꺾이지 않고 쓰러지지 않은 뿌리 깊은 거목(巨木), 지성과 영성(靈性)의 거인(巨人) 다니엘, 팔순이 넘기까지, 하늘의 사랑과 관심을 한 몸에 지녀 온 하늘의 총아(寵兒), 하나님의 귀염둥이 다니엘, 그 다니엘의 파란만장했지만, 참으로 자랑스러웠던 위대한 일생도 서서히 저물어 갔다.
그리고 격전의 연속이었던 구속사(救贖史)의 뜨거운 한낮 동안 땀과 피와 눈물로 얼룩진 하늘의 아들에게, 부활의 새 아침을 약속하며, 기나긴 환난과 죄악의 겨울 밤 동안의 휴식을 가져올 깊고 오랜 단잠을 자애로우신 하늘 아버지의 평화로운 자장가가 아련히 들려온다.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 날에는 네 업을 누릴 것임이니라"(단 12:13).

  다니엘의 하나님이 곧 지금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다니엘에게 인봉된 채 주어졌던 비밀이 지금 펼쳐져 우리의 손안에 있다. 다니엘을 지키고 인도하셨던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도 지키고 인도하실 것이다. 다니엘에게 말씀하시고 축복하신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도 말씀하시고 축복하고 계신다. 다니엘에게 영원한 하늘과 부활과 영생을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기별을 믿고 따르는 우리에게도 하늘과 영생을 약속하신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도 다니엘처럼 사는 일이다. 다니엘의 하나님이 이 일에도 우리를 도우셔서, 우리 모두로 다니엘처럼 살 게 하시기를 기도드리는 바이다. 아멘.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 12:3).

 ▶ 영원, 어디서 보낼 것인가

  영국의 유명한 정신과 의산인 F. 윈슬로(Winslow) 박사에게 나폴레옹 3세의 소개장을 지닌 프랑스의 귀족 청년이 찾아왔다. "박사님, 잠 좀 자게 해주십시오. 여러 주일 잠을 전혀 자지 못하여 미칠 것만 같습니다." 윈슬로 박사는 동정 어린 눈길로 청년을 바라보며 물었다. "청년은 최근 사업의 실패나, 명예 손상, 가정 문제 등 어떤 문제로 크게 충격이라도 받은 일이 있소" 젊은이는 모두 부인했다. "당신이 진실을 말해 주지 않으면 나도 아무 도움을 줄 수가 없습니다. 이유를 말씀하세요."
청년은 괴로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선생님, 저는 무신론자로서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잠자리에만 들면, 이런 심각한 질문이 압도해 옵니다. "영원, 나는 그 시간을 어디서 보내야 할 것인가(Eternity, where shall I spend it?)."이 질문만 떠오르면 잠은 멀리 멀리 가 버리고 골이 터지도록 번민에 압도됩니다."
앞으로도 시간은 영원히 흐를 것이다. 50년 후, 100년 후, 1,000년 후, 그 때 나는 어디 있을 것인가. 그 때의 나의 운명은 어떠할 것인가. 그것은 지금의 선택에 달렸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기로 결정할 것인가. 그것은 지금의 선택에 달렸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기로 결정할 것인가. 지금이 바로 그 영원한 운명을 결정할 엄숙한 선택의 시간이 아닌가. 지금 이 바로···.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 9:27, 28).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계 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