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과 예수의 생애와 사명

by admin posted Dec 27,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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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누가복음 19장 10절).  
 

때가 차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갈라디아서 4장 4절).
 
  하나님께서 이미 계획하신 때가 이르매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아들로 더불어 세상을 창조하실 계획을 세우실 때부터의 경륜이었습니다. 인류가 타락하게 되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어 범죄한 인류를 구원하시기로 한 것이니, 이것이 곧 ‘평화의 의논’입니다. 그리하여 예정된 때가 이르자 예수께서는 경륜대로 전 세계의 중심지가 되는 유대 나라의 베들레헴에서한 아기로 탄생하시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은 선지자 미가가 예언한 것인데, 이르기를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미가서 5장 2절)고 하였고, 공생애 시작에 관해서는 다니엘의 예언서(다니엘서 9장 25~27절 참고) 가운데 그 연대까지 분명히 예언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온 인류의 구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예정하신 그 시간에, 예정하신 그 장소에서
가장 비천한 환경 가운데 탄생하시고, 전혀 생각지 않았던 목자들과 먼 동방에서 온 박사들의 경배
와 축하를 받으셨습니다.
 

 어렸을 때
  그 후 박사들은 고국으로 돌아갔고, 요셉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나사렛의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애굽으로 피난하였습니다. 이는 당시에 왕으로 있던 헤롯이 자기의 왕위를 빼앗길까 두려워하여, 유대인의 왕으로 나셨다는 아기를 죽이려 했기 때문입니다. 아기를 해하려던 헤롯왕이 죽은 후에야 그들은 나사렛으로 돌아왔습니다.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누가복음 2장 40, 52절).  
  이 말씀은 누가가 기록한 예수의 어렸을 때의 모습입니다. 이것은 매우 간단한 말씀이지만,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충실히 자라고 있음을 잘 나타냅니다. 어린 예수는 그 지혜와 기능이 뛰어나게 자랐으며, 그 품성이 아주 부드럽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과 육체의 능력 또한 균일하고 자연스럽게 잘 발달하였습니다. 그는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봉사하기를 좋아하였으며, 굽히지 않는 인내력과 변함없는 성실성을 가졌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의 자라남을 주목하였으며, 그를 하나님의 뜻대로 양육하기 위하여 하늘로부터의 지혜를 얻기를 간절히 원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린 예수를 무릎에 앉히고 성경 말씀을 가르쳐 주기를 힘썼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는 당시 랍비(유대인의 선생)들의 학교에서는 배우지 아니하였을지라도 성경 말씀을 잘 알았고, 또한 천연계의 모든 사물을 주목하여 살피는 가운데 하늘의 지혜를 얻었습니다.  
  예수는 열두 살 되던 해 유월절에 그 부모와 같이 예루살렘에 올라갔는데, 일행이 돌아올 때에 그는 예루살렘에 올라갔는데, 일행이 돌아올 때에 그는 예루살렘에 머물러 랍비들과 토론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저희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기더라”(누가복음 2장 46~47절).  
   열두 살 난 예수의 슬기로운 질문과 그의 놀라운 대답은 당시에 지식을 자랑하던 랍비들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어른이 되기까지
  그는 삼십 세가 되기까지 가난한 목수 요셉의 집에서 그의 아들로 자라나 장성한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그는 인간의 온갖 고통과 쓰라림을 맛보면서 요셉의 목수 일을 신실히 도왔습니다. 그는 날마다 수고스러운 노동을 하였으나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충성스럽게 그 책임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그는 같이 모여서 쓸데없는 장난이나 한담을 할 만한 시간의 여유를 가지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나사렛이라는 동네는 몹시 악한 동네였습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고 반문할 만큼 악한 습관이 가득한 고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곳에 사시면서도 그 악한 습관에 물들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항상 자신의 순결을 보전하시기 위하여 매우 경계하고 주의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는 사랑과 동정심이 많으셔서, 고난당하는 자를 보면 도와주고, 멸시당하는 자를 보면 위로하고, 연약한 부녀자들과 아이들을 친절히 돌보아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르기를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브리서 4장 15절)고 하였습니다. 그는 우리를 변호하시고 우리를 대속하시고 우리의 모범이 되시기 위하여 우리와 똑같은 처지에서도 죄 없는 생활을 하셨습니다.
 

 침례받고 공생애에 
  유대인들은 삼십 세가 되어야 공직에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삼십 세가 되어서야 공생애에 나아가기 위하여 침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러 요한에게 나아가실 때에, 요한은 그에게서 기이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범할 수 없는 위엄과 깨끗하고 고상한 기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오직 예수만은 신성한 분위기를 발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요한이, 그가 이스라엘이 바라는 메시야가 아닌가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요한에게 확신을 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죄가 없으시니 개인적으로 볼 때 침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침례는 회개한 자가 그 죄를 물에 장사해 없애는 것을 상징하는 의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는 본을 보이기 위함이었으므로, 침례 받는 것을 좋게 여기셨습니다. 그는 요단강으로 내려가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셨는데, 온몸을 물에 잠그는 침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께서 물에서 올라오실 때에 성령께서 비둘기같이 내려 그에게 임하셨으며, 또 하늘에서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태복음 3장 17절)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에 요한은, 예수께서 틀림없이 메시야이신 것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무리들에게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한복음 1장 36절)라고 말하였습니다.
 

시험을 당하심
  침례를 받으신 후, 예수께서는 장차 행하실 당신의 사업을 구상하시며 능력을 얻기 위하여 조용한광야로 나아가셨습니다. 거기서 그는 40 일간을 금식 기도하시며 마음의 준비를 하셨습니다. 일찍이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 범죄 하게 한 사단은 이때야말로 예수를 유혹할 만한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사단은 제일 먼저 식욕을 이용하여 예수를 시험하였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태복음 4장 3절)고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능력을 먼저 자신의 이기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사용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곧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태복음 4장 4절)는 구약 성경 신명기 8장 3절의 말씀으로 이에 답변하셨습니다. 이에 사단은 성경 말씀을 이용하여 예수의 자만심을 일으켜 보려고 하였습니다. 사단은 그를 높은 곳에 세우고 뛰어내리라 하면서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마태복음 4장 6절)고 하였습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마태복음 4장 7절)고 하시고 성경 말씀으로써 그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다음에 사단은 예수를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마태복음 4장 9절)고 하였습니다.  이 말에서 사단의 정체를 알게 되신 예수께서는 곧 물리쳐 이르시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마태복음 4장 10절)고 하셨습니다. 이같이 사단은 사람을 시험하되, 먼저는 먹는 문제, 다음은 교만심을 길러주는 명예, 그 다음은 세속적 번영과 권력, 이 세 가지로써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하려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시험을 이기게 하는 것은 오직 성경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을 마음속 깊이 간직해 두는 것은 시험과 유혹을 이기고 이 세상을 안전하게 살아가는 훌륭한 방법이 됩니다.
 

봉사와 전도 사업
  예수께서는 침례를 받으시고 시험을 이기신 후 고향 나사렛으로 돌아가서 거기서부터 전도를 시작하셨습니다. 안식일이 이르자 그는 나사렛 회당에 들어가서 당신의 사명에 관하여 예언한 이사야의 글을 읽으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누가복음 4장 18, 19절 ;이사야서 61장 1, 2절 참고).
  예수께서는 읽기를 마치시고 앉으시며 이르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누가복음 4장 21절)고 하셨습니다. 이는 곧 이사야의 예언이 자기에게서 성취됨을 확증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마태복음 9장 35절).  
 예수께서는 각 회당에서 생명의 말씀을 가르치시며 모든 병자와 쇠약한 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가난한 자의 동정자가 되시고, 죄인의 친구가 되시며, 과부와 고아들의 보호자도 되시고, 어린이들을 사랑하는 축복자도 되셨습니다. 모든 어려운 처지에 빠진 자들이 그에게서 해결책을 구하고, 모든 마음을 상하고 번민하는 자들이 그에게서 마음의 위안을 받았습니다. 예수께서는 참으로 훌륭한 의사이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지혜가 이해하지 못할 허다한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소경이 보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벙어리가 말하고 문둥이가 깨끗하여지며, 사악한 귀신 들린 자가 나으며, 죽은 자까지도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바람을 꾸짖어 파도를 진정시키고, 떡 다섯 덩이와 생선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이시고, 바다 위를 육지같이 걸어가시고, 물이 포도주가 되게 하시고,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말씀으로 말라 죽게도 하셨습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그가 하셨으며, 이는 곧 그분의 신성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탄생에서 인성과 신성의 결합을 보았지만, 또한 그의 생애에서 단순한 인성이 아니요 신성을 갖추신 그분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만물을 만드신 이시며 창조의 능력이 그분 안에 있습니다. 그가 인성을 쓰셨으나 오히려 신성을 가지셨고, 하늘과 땅 사이에 다리가 되셨으며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화해시키는 중보자가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장 6절)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사명과 십자가
  예수께서는 신성으로 인성을 쓰신 것을 자랑으로 생각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항상 자신을 가리켜 인자(人子) 곧 사람의 아들이라 부르기를 좋아하셨습니다. 그가 당신의 사명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누가복음 19장 10절).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태복음 20장 28절)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했을 때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 말하기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태복음 1장 21절)고 하였습니다. 예수의 사명은 잃어버린 자를 찾는 것이요 목숨을 바쳐 죄인들의 죄를 대속하여 저희를 그 죄에서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이르시되 “모세가 광야에서 벰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 3장 14~15절)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벰을 든다는 것은 당신이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의미한 말씀인데, 옛적에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을 탈출하여 광야에 있을 때 불순종함으로 저주를 받아 온 무리가 불벰에게 물려 죽은 자가 많았습니다. 그 때에 모세가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불벰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민수기 21장 8절)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놋벰을 만들어 장대 위에 두었을 때 그것을 쳐다본 자는 모두 살았습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지실 십자가를 상징했던 옛 일을 상기시키시면서, 당신이 실제로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예고하는 동시에 당신의 십자가의 대속을 믿고 구원을 얻으라는 호소를 하신 것입니다. 과연 이 십자가야말로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께서 인류를 사랑하신 지극한 희생의 기념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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