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안식일 예배 시간입니다.
찬양대석에서 직선으로 마주 보이는 좌석이 그날따라 휑하게 비어 있었습니다.
고 오윤기장로님과 배윤덕집사님께서 늘 다정하게 앉아 예배하시던 그 자리가
그날따라 왜 그리 더 크게 보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찬기운이 쌩하게 스치는 허전함을 부여 안고 찬양을 했습니다.
조금 긴 이별의 진한 슬픔을 안고도 찬양을 할 수 있는 건
우리의 소망되시는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기 때문이겠지요.
한 20여년 되었나 봅니다.
매주 안식일아침, 교회에서 뵐때마다
물설고 낯설은 산호세땅에 갓 시집온 새댁을 반가히 맞이해주시던
눈길이 어찌 그리 따뜻하던지요.
안교 교과시간에는 꽤 까다로운 주제들도 헥심을 따라 일목요연하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시던 말씀들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고
늘 단상에서 보여주셨던 논리정연하고 간결한 언변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속에 선명한데
이제는 부활의 그 아침까지 다시는 뵐 수 없다니
아직 믿기지 않는 사실입니다.
그 언제인가 이국땅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한국인의 혼을
조금이라도 불어넣어 줄까 싶어 시작한 한글학교,
그러나 매주 자원봉사할 교사를 구할 수 없어 마음을 동동거릴 때
기꺼이 교사로 수고해주시겠다고 하셔서
이 젊은이에게 큰 용기가 되어주셨던일들,
우연한 기회에 지역 일간지에 졸필을 투고할 때도
빠짐없이 스크랩하시고
"좋은 글 많이 쓰라"고 격려해 주셔서
이 젊은 가슴에 힘이 되어 주셨던 일들,
안교를 맡아 철모르고 애쓸 때
교과반 교사를 거절하지 않으시고 수락하여 주셔서
이 젊은이에게 겸손함의 미덕을 말없이 보여 주시던 일들,
아직도 기억속에 생생한데
이제는 부활의 그 아침까지 다시는 뵐 수 없다니
아직 믿기지 않는 사실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중요한 일들,
Fire Inspection이나 PG&E 검침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몸된 교회 건물을 내집처럼 돌보시던
오장로님의 손길흔적이 예배당 이곳 저곳에 아직도 남아 있는데
이제는 부활의 그 아침까지 다시는 뵐 수 없다니
아직 믿기지 않는 사실입니다.
오늘 오후에 추모예배를 위해
여집사회 회원여러분들이 모여 음식을 준비하였습니다.
깻잎김밥을 말고
야채김밥을 말고
스프링 롤을 말고
여러분들이 모여 장로님을 추억하며 음식을 준비하였습니다.
늘 먼저 악수를 청하시는 따뜻한 성품의 장로님을 추억하였고
늘 말없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하시던 장로님의 성품을 추억하였고
늘 나직하지만 진실된 모습이셨던 장노님의 성품을 추억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추모음식을 장만하였습니다.
이구동성으로 추억하는 장노님의 모습은
늘 따뜻하고 진실했던 그리스도인의 모습이었습니다.
누구에게나
따스했던 기억은 오래오래 남는 법입니다.
누구에게나
진실된 모습은 오래오래 가슴에 남는 법입니다.
생각만해도 기분 좋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생각만해도 힘이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부활의 그 아침까지 다시 뵐 수 없지만
우리 재림신앙인의 가장 멋지고 힘있는 마지막 한마디,
“ 존경하는 고 오윤기 장로님,
부활의 그 아침까지 편히 쉬십시오.
그날 아침에 기쁘고 반가운 마음으로 다시 뵙겠습니다.”
우리는 이 한마디의 소망을
감사함으로 허전한 가슴에 담고
내일을 바라봅니다.
-2012년 4월 29일
여집사회를 대표하여 고 오윤기 장로님 추모글을 대신 씁니다.-